목장훈련교안

작성자 Admin(admin) 시간 2018-01-27 10:42:16 조회수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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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마지막주

사명의 자리 ④만지심의 흔적

본문:마태복음20:32-34 

 

 

1월달 사역이 마지막주를 향하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사역에 마음과 뜻을 다하여 동역 할 때, 주님의 영광이 사역의 현장에 충만하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사명의 자리에서 신자가 남겨야 할 영적인 흔적들에 관해서 생각했습니다. 예수의 흔적 구별의 흔적 경계의 흔적, 이 세 주제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신자가 어떤 삶의 흔적을 남기는가는 대단히 중요한 신앙의 내용입니다. 신자의 일거수 일투족이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5:14-16)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지만, 구원받은 이후에 신자답게’ ‘구원받은 백성답게사는 것은 마땅한 신자의 의무입니다. 금주는 한걸음 더 나아가 신자의 내면에 주님이 남겨주신 흔적에 관한 내용을 살피면서 1월달 사역을 종결하려고 합니다.

 

 

만지심의 흔적

 

성경은 세상에 출생하는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죄인이라 함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를 인식하지 못하는 차원에서 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류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 안에 거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흠없는 걸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창조당시 에덴동산 안에 거주할 때 아담은 죄인의 신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맺은 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대항하려고 선악과를 취하는 순간, 그들의 신분은 죄인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죽음은 육의 죽음과 더불어 영혼의 죽음으로 귀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 출생하는 모든 인간은 반드시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고, 동시에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를 인식하지 못하는 영혼의 죽음을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죽음이 찾아온 것은 죄의 결과로 인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로마서6:23) 바울이 죽음에 대하여 정확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죄의 결과로 죽음이 왔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세상에 출생하는 모든 인생은 태어나자 마자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고, 그 죽음의 끝에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예외가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죽음을 넘어 생명의 자리로 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시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시고, 그 죽음의 댓가로 하나님이 택한 자들을 구원하시기로 한 것입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예정과 간섭으로 오늘 이 목장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구원의 자리, 생명의 자리로 인도된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영원을 바라보는 시각이 열리게 되었고, 세상만이 전부였던 삶에서 저 영원한 나라로 그 발걸음이 옮겨지는 인생으로 바뀐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맹인 두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주님이 그 길로 지나신다함을 듣고, 이렇게 외칩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30) 그때 주님이 그들을 보시고 다가가시어, 그들의 눈을 만십니다. 그러자 그 눈이 뜨여져 보게 되는 축복의 사건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증거는 주님이 맹인의 눈을 뜨게 했다는 것을 넘어, 성경은 그들이 영의 눈이 뜨여졌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고백, 다윗의 자손 예수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은 구속자로 오실 메시야를 의미하는 것인데, 이미 이들은 그 인식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주님이 그들의 육의 눈을 뜨게 하신 것입니다. 세상에는 의술로 눈이 고쳐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그 눈이 뜨였다고 예수를 구원자로 믿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육의 눈만이 아니라, 영의 눈이 뜨여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의 눈이 뜨여졌다는 것은 곧 주님의 만지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초월적인 역사이기에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생애 속에 이 만지심이 있었음을 알고, 이제부터 이 흔적을 자랑하며,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삶이 마감되는 시간까지 주님의 만지심이 간증이 되고 능력이 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