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훈련교안

작성자 Admin(admin) 시간 2020-08-01 18:09:29 조회수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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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첫주] ​① [참된 희망]-주의 나라

 

[본문:시편 106:4-5]

 4.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5.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
어 가지게 하사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

 

   8월의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한달 동안 ‘지성소로 나아가 절망을 넘는 공동체’의 주제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절망넘기-확정된 결말, 확정된 길, 확정된 시간, 확정된 계획’의 네 주제로 신자 앞에 다가오는 절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확인했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 해서 절망에서 면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절망은 신자의 삶을 어렵게 하고, 때로는 깊은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넣기도합니다. 하지만 신자의 삶이 그것으로 파선되거나 파멸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실패케 하려 부르신 것이 아니라, 승리하게 하려고 콜링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극심한 고난이 있었지만 결국은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셔서 승리를 확정하신 것처럼, 그 앞에 부름 받은 모든 신자들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절망의 여파가 신자의 삶을 근원적으로 흔들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자의 삶의 중심에 놓여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희망’입니다. 이것은 일말의 어떤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미래에 놓여있는 절대적 소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절대적 소망은 세상안에 있지 않고 세상을 넘어선 곳에 있습니다. 바로 주의 나라에 있는 것입니다.  금주는 이 주제로 은혜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① [참된희망] 주의 나라

 신자의 삶이 가장 능력이 있을 때가 언제인가 하면, ‘희망’을 가질 때입니다.  삶이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 영역안에 머물고 있다면 결국은 다시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많은 경우 현실적인 부나 명예나 권력이 모자라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희망의 트랙에서 이탈되기 때문에 파국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 그러한 경우를 종종 봅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 문제 없어 보이고, 재력도 있고, 가정 환경도 좋은데, 어느날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무엇이 문제가 된 것입니까? 희망의 끊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확실히 인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이 제시하는 희망은 참된 희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희망의 포장지로 포장 했을뿐이지, 그 안을 열어보면 취할 수 없는 현실의 껍데기만 놓여있는 것입니다. 전도서를 기록한 다윗은 말합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1-2) 세상 안에 희망이란 ‘헛된 신기루’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127:1) 누군가 세상안에 참된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그는 거짓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참된 희망은 세속 나라에 있지 않고, 하나님 나라, 곧 주의 나라에 있다고 말합니다. 시편기자는 말합니다.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시145:13) 그러면 왜 주의 나라에 참된 희망이  있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은 두가지를 말합니다. 첫 번째는 주의 나라 안에 있을 때 ‘형통함’이 있고, 두 번째로 ‘기쁨’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이 형통함과 기쁨은 세속적 개념의 형통과 기쁨이 아닙니다. 영혼의 형통, 영혼의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은 주의 나라 안에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삶이 어려워도 영혼의 형통함이 있고, 삶의 깊은 내면에 영혼의 기쁨이 놓여있다면 어둠의 동굴을 빠져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의 나라는 미래적인 나라로 신자 앞에 제시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나라는 미래적이지만 동시에 현재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주의 나라를 이 현실에서 어떻게 인지하며 살 수 있습니까? 그것은 주의 통치를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가 주의 나라가 영원하다 말하면서, 그 통치 또한 대대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주의 통치를 받을 때 참된 희망이 보이고, 그 통치권 아래 거할 때 세상을 이길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삶이 참된 희망으로 연속되길 원한다면 주의 통치 아래 순종하며 사십시오. 그 통치로부터 오는 축복과 자유를 누리며 사십시오. 그럴 때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던 탄식과 절망은 떠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