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훈련교안

작성자 Admin(admin) 시간 2018-01-13 10:40:19 조회수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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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둘째주

사명의 자리 ②구별의 흔적

본문:출애굽기32:25-29 

 

 

1월달에 살피고 있는 말씀의 내용은 사명의 자리에서 어떻게 헌신의 흔적을 남길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입은 모든 성도는 그 부름받는 곳이 곧 사명의 자리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를 특별히 부르신데에는 그 목적하는 바가 있는데, 그 목적이 사명의 수행에 있습니다. 이 사명을 수행하는 자가 사명자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모두는 다 사명자입니다. 신자의 삶에 가장 우선되고 가장 가치있는 것은 사명의 이행 에 있습니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명성, , 지위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지난주에는 사명의 자리-예수의 흔적의 주제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그토록 핍박했던 바울이, 오히려 예수를 증거하는 사람으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몸에 예수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금주는 구약의 출애굽기서 말씀을 통하여 사명을 수행하는 자리에서 구별의 흔적을 남기게 된 사건을 통해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구별의 흔적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하고 난 다음, 이제 가나안 땅 입성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기억할 것은 출애굽 전의 이스라엘출애굽 이후의 이스라엘은 다른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출애굽 전의 이스라엘의 신분은 포로인이었지만, 출애굽 이후,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의 신분은 자유인의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유인은 단순히 포로에서 해방되었다는 의미에서 자유인이 아니라,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땅에 들어가야 하는 의미에서 사명에 매여있는 자유인인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라고 할 때 종종 망각하는 것은 그 자유 안에 책임이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자유는 방종과는 다릅니다. 형태는 비슷하나 그 안에 놓인 성질(性質-본성적 질)은 다른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그런 것입니다. 그들이 포로인의 신분에서 자유인의 신분으로 바뀐 것은 혁명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자유를 취득했다고 책임까지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 그들에게는 무한한 책임이 전가된 것입니다. 그 책임은 구별된 백성인 하나님의 권속으로 살아가야 할 책임이며 동시에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하는 책임입니다. 이 책임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제시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그 책임에서 이탈한 이스라엘을 보게 됩니다.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가 더디 내려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부재한 틈을 타서, 보이는 신 우상을 만들게 됩니다.(32:4) 그리고 그 우상 앞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먹고 마십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서로에게 했던 말이 이렇습니다.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신이라...’(8) 하나님의 명예와 하나님의 통치권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행위를 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9-10)

 

결국 모세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중보를 합니다. 이 백성 전부에게 화가 미쳐 고통받는 일은 없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11-13) 여기에 대하여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14) 그러나 이 일에 주동했던 자들을 심판하기로 모세가 결정합니다. 이제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했던 일을 마치고 증거판으로 받았던 십계명을 우상 앞에 춤추고 먹고 마시던 자들에게 던집니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7.여호수아가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18.모세가 이르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19.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17-19)

 

그리고 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합니다. 그리고 난 후 그들을 처단합니다. 이 처단의 내용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본문의 말씀 다같이 읽음) 우상 앞에서 하나님을 조롱하고 흥청망청한 이 자리에 유일하게 참여하지 않았던 지파가 레위지파입니다. 레위지파가 칼을 차고 자기 형제, 자기 자매, 아들, 부모 친척들을 다 처단합니다. 얼마나 처참한 비극의 상황입니까? 그날 하루에 죽은 사람이 3천명 가량이었다고 본문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포로인에서 자유인으로 그 신분이 바뀌었지만, 사명에 매여있는 자유인임을 망각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사명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우리가 중요하게 보아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모세의 증언입니다.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29) 이렇게 부모 형제가 죽어나가는 도륙의 사건 앞에서 이것이 여호와께 헌신되었다고 모세가 말하는 대목입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비극이고, 엄청난 비애이지만, 성경은 이 행위가 여호와께 헌신되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구별입니다. 사명은 구별과 함께 간다는 것입니다. 사명자는 구별된 자라는 것이고, 구별되이 살아야 함을 강력히 교훈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만 ()’하여 있고, 하나님께만 의존(依存)된 자를 그 백성이라고 규정하고 있음을 기억해야합니다. 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이 취하시지 않습니다. 사명을 받은 자는 그 자리에 구별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과 대충 섞여 사는 행태와 태도를 버려야합니다. 오늘 이 목장예배를 드리는 목원들의 삶이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행동의 구별이 있어야 하며, 태도의 구별이 있어야 하며, 언행의 구별이 있어야 합니다. 신자의 일거수 일투족이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명예와 권력을 더 우선되는 가치에 집착하여, 그것에 시간과 정력과 에너지를 빼앗겼다면 되돌려야 합니다. 신자는 사명 앞에 있는 자이며, 그 사명의 자리에서 구별의 흔적을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올 한해 우리가 속한 목장의 자리가 가장 거룩하게 구별된 자리가 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일 때에 거룩한 성령님이 임재하시고, 이 자리에 참여할 때에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영적인 신비를 느껴야 할 것입니다. 금주도 구별되이 살아 주의 영광이 온 세상에 드러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