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훈련교안
2월의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2월 사역의 주제는 ‘은혜의 강을 건너 주의 평강을 전하는 공동체’입니다. 지난 1월은 ‘은혜의 강-주의 선하심’의 주제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은혜의 강을 건너는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반드시 신뢰해야 하며 그럴 때 강을 건너 부요함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늘 신실하시고 선하신 분입니다. 자신이 선택한 백성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 공동체에 미치고 있기에 구원의 여정에 이탈 없이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2월에는 그 선하심이 신자들에게 평강(샬롬)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한 달간의 사역을 하려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독특한 특성이 있는데, 그것은 구원받은 신자의 삶 안에 평강, 곧 샬롬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평강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릅니다. 소유나 지위를 통해 얻은 안정감돠는 다른 차원입니다. 그리고 초기 기독교 시대, 로마가 주었던 힘의 평강과도 다른 것입니다. 이 평강은 구원자 그리스도와 연결되고 그 안에 속할 때 주어지는 신적 평강입니다. 이 평강을 주시는 분은 ‘선하신 분’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적으로 선하시기에 평강을 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은혜의 강을 건너는 모든 신자에게는 이 평강이 축복으로 주어집니다. 2월은 이 주제 ‘은혜의 강-주의 평강’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구원받은 신자의 삶에 가장 큰 축복은 신적 평강이 주어지는 데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도 간헐적 평강은 있었습니다. 아픈 몸이 나아질 때, 소유가 넉넉해질 때, 가족 간의 관계가 좋아질 때 오는 일시적 평강이 있었습니다. 신자들도 예외 없이 이러한 범주의 평강을 맛보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평강은 이 정도 차원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의 평강은 상황이나 환경을 넘어서는 것을 말하고 있고, 외부의 충격이나 시험에도 흔들림이 없는 평강을 말합니다.
우리 교회가 올해 ‘은혜의 강을 건너는 공동체’의 주제로 사역하는 이면에 은혜의 강을 건너면서 위로부터 오는 평강, 신적 평강을 경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일 신자가 이 평강을 경험하지 못하고 신앙의 여정을 걷고 있다면 가난한 것입니다. 신자가 누리는 영적인 복은 죽어서 천국에서 경험하는 데 있지 않고, 자신의 생을 마치기 전 현실의 삶에서 맛보아야만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현실에서 주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16,17) 하나님을 떠난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인생은 길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에 기술된 바와 같이 ‘파멸과 고생의 길’을 가든지, 아니면 ‘평강의 길’을 가든지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평강의 길을 가야 하는데 그 길을 알지 못한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평강의 길을 가고 싶은데 길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극입니다. 길을 가는데 그 길의 종착점에 파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파국이 놓여있습니다. 이보다 더 큰 비참함이 어디 있겠습니까? 본문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합니다.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정확한 지적입니다. 여기에 두려움이란 경외감을 말합니다. 피조물이 아닌 창조주를 인식할 때 오는 경외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적 평강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신적 평강은 주권자 하나님으로부터 오게 되며, 그분을 자신의 구원자로 인지할 때 옵니다. 그럴 때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에게 평강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평강의 길은 하나님 안에만 있고 주권자 하나님만이 제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 그분으로부터 구원을 받았고, 그의 권속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걷은 이 길은 평강의 길입니다. 이 길을 걷고 있는 이상 그 누구도 해하거나 무력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 길에 하나님이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2월 한 달, 하나님과 동행하심으로 평강의 길을 잘 걸어 흔들림 없는 삶을 사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