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훈련교안

작성자 Admin(admin) 시간 2024-05-25 08:37:29 조회수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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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6: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5월의 마지막 주를 맞았습니다. 지난 세 주간, 부어 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5월의 남은 한 주에도 풍성하길 기대합니다. 5월의 사역의 주제는 삶의 질서가 치유되어 회복을 누리는 공동체입니다. 삶의 질서를 잘 구축하는 것은 세상에 대하여 승리하는 첫 단계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실력이 있어도 삶의 질서가 무질서하면 시간이 문제이지, 곧 무너지고 맙니다. 삶의 질서를 세운다는 것은 육적인 삶의 질서를 반듯하게 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질서 있게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리할 것을 정리하고 주변을 단순하게 하여 질서정연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자도 육적인 삶을 이렇게 질서있게 해야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면 안됩니다. 신자는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영원을 향하여 가는 존재이기에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신자는 자신의 삶을 주관 하시고, 운용 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하는 영적 의무를 부여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까닭에 신자는 육적 질서를 넘어 영적 질서를 잘 세워, 육적인 삶이 신자의 영적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는 지난 세 주동안 신앙의 질서를 세움’ ‘관계의 질서를 세움’ ‘가치의 질서를 세움의 주제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제 남은 한주간은 마지막 주제인 새 질서를 세움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성경의 교훈을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금주의 목장 주제는 새 질서를 세움입니다.

 

새 질서를 세움

 

세상의 질서의 근간은 입니다. 민주주의 사회가 잘 발달된 나라일수록 법 체계가 명확하고 구체적입니다. 미국과 캐나다 유럽 국가들이 그렇습니다. 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 해야하고 또 차별없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개인이 가진 지위와 힘에 의해 법의 판결이 한 쪽으로 기울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차원에서 대한민국은 법 체계가 잘 정비되어 있고, 아무리 힘이 있는 권력자라도 법에 위배되면 법의 판단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최근 몇 년 사이, 최고 권력자들이 법의 판결을 받고 옥고를 치르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결국은 법의 판단이 최종적 결정이기에 누구든 수용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 공동체나 사회를 유지하게 하는데, 법은 중대한 기초입니다. 신자도 법 질서를 따라야 하고, 세상이 정해 놓은 규범과 법률을 지켜야합니다. 그러면 신자가 질문할 것은 이것입니다. 과연 세상이 정해 놓은 법을 잘 지켰다고 구원에 이르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법의 판결이 절대적으로 정의로운가 하는 것입니다. 과연 법의 판단은 무결점의, 0.1%도 오류가 없는 완벽한 판결인가 하는 것입니다. 법의 판결을 내리는 판사는 완전한가 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유대인들은 율법이라는 법의 체계를 붙들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주신 처음의 율법인 십계명을 시작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수백가지가 넘는 율법의 하위 조항을 만들어 놓고 그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은 공동체를 유지케 하는 근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율법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율법이 제시한 항목보다 죄의 항목이 더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법이 죄를 단죄하고 처분하는 것을 따라 갈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죄의 조항은 늘어 난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이 정한 항목을 지킬 수 없었기에 율법의 판단을 받게되고, 북이스라엘은 bc722년에 앗수르에게 남 유다는 bc587년에 바벨론에게 멸망당합니다. 율법을 지켜내지 못한 결과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고심 끝에 고안 해 낸 방법은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죄 없으신 성자 예수를 십자가에 달게 하여 자기 백성의 죄를 사하시는 것으로 진행하십니다. 그렇게 하여 더 이상 법으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베푸시는 은혜로 구원에 이르도록 합니다. 여기에 초대된 초기 기독교 역사의 인물이 바울입니다. 철저한 율법주의자였고,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에 이른다고 확신했던 유대주의자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남으로 행위로가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은총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의 삶에 새로운 질서가 찾아온 것입니다. 옛 질서가 법의 질서였다면, 지금은 은혜의 질서가 자신의 삶을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 여기를 주목해야합니다. 신자는 법 질서 안에서 세상의 법을 지켜야 하는 자들입니다. 세상이 제시한 법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법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기에,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오는 은혜로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알고 날마다 우리 삶을 은혜로 채워가야합니다. 혹 법에 이탈된 사람이 있고, 법을 못 지켜 낙오된 사람이 있을지라도 정죄하기 보다 긍휼이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한 인생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은혜가 신자의 삶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질서이어야 합니다. 은혜 아래서, 은혜를 통하여 우리의 삶이 더 풍성해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